
다음달 5일 처음으로 실시되는 피부미용사 국가자격검정 실기과목 시험 시행을 앞두고 시각장애인들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이번 사태를 둘러싼 이해단체간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가족부는 중재자 역할보다는 오히려 갈등제공자로 각 단체로부터 비난의 화살을 맞고 있는 실정이다.
◇피부미용이냐 VS 안마냐
이번 논란의 핵심은 공중위생 관리 법령 개정을 통해 올해 1월부터 시행돼 이번에 첫 자격검정 시험을 치르는 피부미용사들의 향후 업무가 단순히 피부미용에 머무는 것인지, 아니면 안마의 범위까지 포괄하느냐이다.
시각장애인들로 구성된 대한안마사협회는 피부미용사 제도가 시각장애인 안마사의 독점적 권리를 보장하는 현행 의료법 제82조를 침해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실기시험 일부 과목에 포함된 전신피부관리가 안마와 중첩된다는 것이다. 안마사협회는 이때문에 얼굴, 손, 머리카락으로 관리의 대상을 제한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피부미용의 시장규모가 커지면서 피부관리가 치료의 영역까지 파고들 것을 우려한 의사협회와 한의사협회서도 안마사협회와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다. 이들 단체는 피부관리실이 음성적 성매매의 온상으로 탈바꿈할 수도 있다며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반면 피부미용사들은 공중위생 관리법 개정은 피부미용에 대한 전문성을 요구하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데다 안마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세분화되지 못했던 미용분야가 지난해 4월 미용사일반, 미용사피부로 나눠졌고 피부미용사 자격에 대한 '단순 정리' 의미에서 이번 시험이 치러진다는 것이다.
피부미용사협회 신숙자 사무국장은 "안마사협회가 피부관리를 안마라고 주장하는 것은 터무니 없다"며 "전신관리가 어떤 것인지 직접 시연해서 일반 안마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했지만 안마사협회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 국장은 "하다못해 국제기능올림픽에도 전신관리 종목이 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표면적으로 피부미용사협회는 대립의 각을 의사협회쪽으로 세우고 있다. 장애인단체와 직접적인 갈등을 벌일 경우, 초래될지도 모를 예측불허의 상황을 고심하는 눈치다.
그러나 신 국장은 "피부관리는 어느날 생긴 것이 아니라 이미 30여 년 동안 일반 미용실에서 행해졌던 것"이라며 안마사협회측의 주장을 반박했다. 음성적 성매매의 온상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자정능력'을 강조했다.
◇2006년 헌재 위헌판결 파문 재현 우려
이해단체들간의 알력과는 별개로 이번 사태가 갖고 있는 강한 인화성은 우려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안마사협회측은 2006년 5월 헌법재판소가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이 주어지는 '안마사에 관한 규칙'에 위헌판결을 내렸을 때 일어났던 비극의 재현을 예고하고 있다.
당시 헌재의 결정에 항의해 2명의 시각장애인이 자살을 시도했고, 이에 국회가 나서 헌재의 결정을 뒤엎어 현재의 의료법을 만들었다. 단순히 이해단체의 엄포로만 들리지 않는 대목이다.
7월부터 복지부 앞 등에서 연일 항의집회를 연 안마사협회는 복지부에 구체적으로 국가자격검정실기과목 중 안마와 유사한 형태의 특수관리를 폐지할 것과 피부미용을 하는 신체의 범위를 제한시켜 줄 것을 두드러지게 요구하고 있다.
또한 피부미용업의 별도 개설을 제한하고 올해 이전 미용사 자격 취득자의 피부미용 업무인정 종합면허 부여 경과조치를 폐지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마사협회는 복지부의 입장변화가 없자 이달들어 협회장의 음독, 임원들의 한강 투신 등 극단적인 수단까지 동원하고 있다.
3일 복지부가 안마사협회의 주장 중 일부를 수용, 특수관리의 하위개념인 한국형피부관리를 삭제하는 등 조치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들의 노기는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올들어 이미 헌재에 현행 의료법에 대한 위헌소송을 낸 스포츠마사지협회측과 빚은 극한 갈등의 여진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이어서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만 있다.
안마사협회 박현수 이사는 "피부미용사 제도 자체가 근본적으로 시각장애인의 침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며 "국가가 시각장애인의 일자리를 빼앗으려 한다"고 말했다.
박 이사는 "더 극단적인 투쟁이 이뤄질 수밖에 없고, 통제불능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현재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이해단체간의 역학관계가 워낙 첨예하게 엮어져 있어 개입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시각장애인들의 어려운 처지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현실적으로 그분들의 요구만을 다 수용하기는 어렵다"고 피부미용사협회와의 형평성을 거론했다.
당장 피부미용사협회도 1일부터 종로구 청운동에서 피부미용 허용 신체부위 확대를 요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기 때문이다.
◇해결책은 없나?
복지부는 전체 시각장애인의 3%수준인 6800여 명의 안마사가 전국 1000여 개 업소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피부미용사들은 전국적으로 10만명 정도가 시험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양측 다 생계문제를 자신들 주장의 근거로 삼고 있다.
전문가들은 과거와 변화된 시대인 만큼 신규직업과 구직업간의 충돌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피부미용사 시험제도 관련 규정에는 다소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규정자체가 안마사와 피부미용사간의 차이보다는 유사성을 내포하고 있어 논란의 불씨를 품고 있다는 것.
피부미용사협회측은 피부미용사 제도는 시행에 앞서 지난해 안마사협회, 복지부와 함께 5차례에 걸쳐 논의를 해 합의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안마사협회는 '속았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때문에 전문가들은 차제에 복지부가 피부미용사의 업무영역에 대해 합리적이고 명확한 구분을 둬 두 이해집단간의 충돌을 최소화해야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또한 주변 유사성행위업소의 등장으로 고사위기에 처한 안마업을 되살리기 위한 적극적인 정책으로 시장전체의 파이를 키워야한다고 조언했다.
장애인권문제연구소 신용호 소장은 한발 더 나아가 "이번 사태는 시각장애인의 취업이 극도로 제한될 수밖에 없는 우리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근원이 있다"며 범정부차원의 시각장애인에 대한 일자리 창출이 마련되어야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