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연히 집어든 이 책은 매우 도전적이다. 재미있는 것은 독립협회 인사들의 사상 기반은 자유주의인데 그들이 동시에 민주의식이 있었다고 보면 오늘날 자유민주주의를 주창하는 세력에게 유리한 논지가 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와 함께 독립협회 인사들이 우민관(愚民觀), 사회진화론, 제국주의적 사고를 가진 엘리뜨 부르조아였다고 보면 자유주의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 사상으로 보완, 극복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동의하게 된다.
- 독립협회 인사들이 독립신문을 통해서 퍼뜨리고자 한 사상은 개화 사상이었다. 이 책의 저자에 따르면 개화 사상은 서구적 의미의 사회 진화와 문명화 노선을 추구하는 것이며 그것은 자연스럽게 서구화를 지향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오늘날 FTA를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는 신자유주의적 입장과도 궤를 같이한다. 어쨌든 당시 개화 사상은 민의를 무시하는 것이었고 제국주의 친화적인 것이어서 대일 의존적으로 된 것은 내재적으로 자연스런 일이었다(책 p76).
- 서구 자유주의는 사회진화론에 의거 경쟁을 통하여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로서 선택된 것이므로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후진국 민족은 비문명 집단이므로 교화와 정복의 대상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생각은 바로 제국주의의 실천 근거이기도 하다. 사회진화론은 인종 차별과 백인우월주의를 내용으로 하는 인종주의를 당연시하는데 독립협회 사람들은 그러한 노선을 따르면서 동시에 인종적으로 비슷한 동아시아 3국이 연대해야 하며 그 가운데 가장 강한 일본이 지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봤다(책 p97).
- 저자는 자유주의가 근본적으로 반민중적이고 반민주적이라고 보면서 독립협회가 결코 민주주의를 지향하지 않았다고 한다. 독립협회는 이름과 달리 개인의 부르조아적 자유와 독립에 훨씬 강조점을 두는 활동을 했으며 오직 동원의 목적에서만 민권과 민주를 말했다는 것이 학자들에 의해 밝혀지고 있다.
나는 일제강점기의 친일파의 행태나 오늘날까지 우리 자신을 비하하는 식민사관과 사대주의 등이 제국주의적 우월의식의 이면인 패배의식에서 나오는 것임을 확인하면서 뉴라이트의 기원은 독립협회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함을 알게 되었다. 독립신문에서 발견되는 생각들은 결코 자주와 민주를 기초로 하는 독립국가를 지향한 게 아니고 민을 지배와 동원, 종속 변수로만 보는, 그래서 오히려 유교의 부정적인 면까지 온존시키는 것들이었다.
-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는 바른 길은 학자들의 연구에서와 같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대립하는 것임을 깨닫고 기득권 엘리뜨 내지 부르조아의 이념인 자유주의를 경제적 평등까지 내포한, 그래서 진보 이념을 담고 있는 민주주의 정신으로 견제, 보완하는 데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개화기 독립협회 인사들이 나중에 대부분 매국에 앞장섰듯이 국권의 상실은 어쩌면 겨우 거기까지밖에 깨이지 못한 이 나라 지배 엘리뜨들의 정신에서 당연히 따라온 결과다. 그러니 오늘날 자유와 민주가 한 몸이 될 수 없는 것임에도 마치 한 몸인 것처럼 사고하는 미개함을 하루빨리 벗어나야 할 것이다.
- 책 내용 가운데 아직 인상 깊은 것은 자유주의는 이념이라기보다 욕망이며 지상에서 풍요와 성공을 누리는 기득권자들의 생각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안락함을 잃고 싶지 않은 욕망을 기반으로 차별을 배제하지 않는 각종 선언을 강요하며 그 선언은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많은 이들의 지지를 얻고 있기 때문에 통용되는 것이다.
그들에게 변화는 고통이기 때문에 모든 변화를 거부한다는 의미에서 그들은 보수주의자들이다. 오늘날까지 이 땅에서 보수 정치인들이 보여준 행태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말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