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씨가 이루지 못한 꿈을 유럽에서 완벽하게 성취한 사람이 있다.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당신들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라는 선거 구호로 세번 째 총리에 등극한 사람. 그는 1600 만 명 내외의 철벽 지지자를 기반으로 의회를 장악했을 뿐만 아니라 신문, 영화, 광고, 금융, 축구단도 모자라 이탈리아 최대 상업방송을 가지고 있다. 오늘 방송된 KBS 스페셜을 보고 나는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선거 구호가 베를루스코니의 것과 똑같다는 사실에 전율했다. 과장해서 말한다면 이명박은 베를루스코니를 판박이처럼 답습하고 있다.

다른 점이라고는 대재벌과 상업방송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잘 들여다 보면 이명박의 선거 캠프는 삼성과 언론인들의 연합군이므로 이명박 정권의 본질은 베를루스코니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집권 세력의 사령탑 입장에서 보면 베를루스코니는 자본 권력과 정치 권력과 언론 권력의 삼위가 일체로 된 이상적인 케이스다. 내가 이건희라면 지금의 권력구도를 잘 유지 발전시켜서 언젠가 이재용을 대통령으로 만듦으로써 이탈리아처럼 '아름다운 지배구조'를 달성할 꿈을 꿀 것이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유럽의회에서 왕따가 되고 있으며 국민들은 깊은 우울증에 빠져 있다. 의식 있는 사람들은 앞다투어 타국으로 이민을 가고 있다고 한다. 또 우리에게 88 만원 세대가 있다면 이탈리아에는 6 개월마다 고용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1000 유로 세대가 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포함한 이탈리아의 최고 지성인들은 이탈리아가 이미 받을 벌을 다 받았다고 말하고 있으며 이탈리아를 진단한 미국의 알렉산더 스틸레 교수는 이탈리아는 민주주의의 회복에 한 세대 이상이 걸릴 것이라 하고 있다.

KBS 스페셜에도 나오지만 나도 유럽에 있는 친구에게 직접 들은 바에 따르면 이탈리아 언론은 프라임 타임 톱뉴스에 선정적인 여성의 모습을 보여줄 정도로 연성화되어 가장 탈정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저 미국 교수는 또 TV를 많이 볼수록, 베를루스코니 소유의 방송을 많이 볼수록, 베를루스코니에게 투표할 확률이 높다고 말한다.

문제는 이명박의 모습은 베를루스코니와 무척 닮아 있고 그의 집권 과정과 우리나라의 정치적 지형이 이탈리아의 복사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과자라는 점, 가치관과 역사관이 천박하고 극우적이라는 점, 공기업을 해외에 매각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는 점, 반대파를 두려워하지 않고 권력을 확대하고 관철한다는 점, 반대파를 좌익으로 몰고 탄압한다는 점, 언론을 장악하고 연성화하고 있다는 점 등 이루 세기도 힘이 든다.

하지만 가장 두려운 것은 민주-진보 세력은 사분오열되고 있음에 비하여 이명박은 150 만원 이하의 저소득층과 영남의 소아병적 지역주의자들과 자본과 언론을 소유한 강남 극우 자본가 그룹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진보 진영이 단일 대오를 이루어 저들의 공영방송 장악 시도와 영구 집권 시나리오를 저지하지 못한다면 우리나라는 이탈리아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2012 년에 박근혜나 다른 한나라당 후보가 선출된다면 그 다음에 이재용 대통령이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