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마포>?
작성일 : 09-10-18 07:43
결코쉽지않은 1000회 산행 을 주도한 이동식 마포산악회 회장
|
|
글쓴이 :
편집부
 조회 : 3,251
|

마포에서 가장오랜 산악회를 꼽으라면 단연 마포산악회다ㅣ비록 시작은 정치적 결사체로 출발했지만 이젠 순전히 아마츄어 산악인들의 친근한 동호인 모임이 됐다ㅣ이는 오로지 이동식 회장의 산 사랑의 집념이 20여년세월동안 한결같이 이어져오는 노력의 결과라고해도 과언은 아니라고 본다 . - 편집자 주

민주산악회가 발족하게 된것은 군부독재의 암울한시대에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롯한 민주인사들이 당시군사독재의 눈초리를 피해 민주화운동을 이어가기위한 방편으로 1980년 삼각산에서 발대식을 한것이 계기가 됐다 전국적으로 지부를 결성하는가운데마포산악회도 그 일환으로 탄생의 배경을 갖게된다. 그 후 김영삼 대통령의 당선을 계기로 민주산악회는 해체되고 각 지부는 독자생존의 길에 접어들게 된다. 마포에서의 민주산악회 초대회장은당시야당의 거물인 최형우씨의 사촌 으로 알려진 최영호씨가 맡아 이어오다 1990년2월에 현재의 이동식 회장에게로 바톤이 이어진다. 민주산악회 출신의 많은 인사들이정부나 관변단체 국영기업체등으로 진출하게 되지만 사회의 따가운 시선이 집중하는 곤욕을 치루게 된다. 이로부터 민주산악회는 그 타이틀이유명무실하게 되고 각기 지역의 특 성에 따라 각기 독자적으로 활로를 찾게된다. 이동식회장은 원래 산 사람은 아니다. 물론 고향이 전남 보성으로서 주위의 영향을 받으면서자랐지만 지금이렇게 산에 미칠줄은 그도 전혀 몰랐다. 평소에 장증후군으로 건강이악화돼 병원출입을 했지만 차도가 없어서 우연한 기회 에 산행을 해본것이 약이됐다. 그후 의사가 전하는 말이 이젠 완전히 극복이 됐다는 전갈을 받고서 부터 본격적 산 행을 시작했다. 그렇게 인연을 맺어 마포산악회 회장에 추천돼 오늘에 이르고 있는것 이다. 돌이켜 가장 가슴아플때가 회상되는데 다름아니라 초기에 같이해오던 동료들이 산악회 조직이 활성화 되기만 하면 회원들 을 빼내가는 바람 에 여간 울화가 치밀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출발로부터 3.4개의 갈래 로 나뉘어져서 조직이 분산돼있다고 회고한다. 그렇지만 거기에 굴하지않고 회원 한분한분을 다독거리면서 우직하게 산행을 계속해왔단다.
매주 목요산행 1000회 돌파한 ‘마포산악회’어 는 때는 버스 한 차 에불과6.7 명 이 산행 을 할때 도 있었단다.그 런 고비 를 넘어 이제는 회원만 도 몇백 명 에 이 르 게 된다. 이들을 관리하기위해서 다음에 카페를 개설하고 몸소 카페지기 가돼서 회원간 메신저역할을 자임하고 있단다.놀라운것은 60을 훨씬넘긴나이에 컴퓨터를 애를 먹고 배워 이제는 제법 수준급 실력이 되어있다는것이다.그 많은산행중에 특별 한것을 묻자 우리나라 산은 전부가 다좋은 절경을 가지고 있어특별히 언급하는자체가 무리란다. 회비10000원으로 버티다 이제12.000원으로 올렸는데 회원들에게 좀 미안한 생각이 들기고 한단다. 이제 가을산행을 눈앞에 두고있어서 너무행복해한다.빨간단풍 낙엽 ,산에ㅣ오르면 그 비경 에취해 그속에 자기자신을 묻고싶어지고,영 내려오기가 싫어진단다.산이좋아 산을찾으니 건강해 서좋고 회원간 인간사를 나뉘며 우의를 돈독히다져 좋으니 이보다 더한 낙이 어디또 있을까 ? 이동식회장의 각오요 다짐이다.산과함께하는 그의 열정이 이제 5000회를 바 라보지않을까? 마포산악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대해본다. 취재/정리 김관수 記者
|
|
|
 |
|
 |
2025 년 4 월 |
 |
|
 |
 |
 |
 |
 |
 |
 |
|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
|
|
|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