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전주에서 별명이 김삿갓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별명이 김삿갓인 아버지가 경제력이 없다보니까 어머니랑 제가 7세 때 이혼을 하게 되셨습니다.
그 후 저는 할머니와 아버지 밑에서 자라게 되었습니다. 제가 살던 동네에는 작은 아버지가 4분이 같이 살고 있습니다. 경제력이 없는 아버지 밑이라 다른 사촌들은 모두 학교에 진학했지만, 저는 작은 아버지의 자녀들이 태어나면 계속 아기들을 돌보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같이 놀던 친구들은 학교에 다니는데 나는 애나 업고 다니면서 속상해 하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제 나이 19세에 전주에 살던 6살 연상의 남편을 만나서 어렵더라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38세에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큰딸이 14살, 작은 아들이 9살, 막내가 8살이라 앞날이 막막했습니다. 그러다가 주변의 권유를 받아 한복 짓는 일을 20여 년간 했었습니다. 그렇게 바느질로 아이들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제 나이 환갑 때 아들들이 서울로 집을 얻어서 이사를 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제 나이 67세 때 함께 교회에 다니던 권사님이 양원초등학교를 소개해주었습니다. 글을 모르는 사람에게 한글도 가르쳐 주고 산수도 가르쳐 준다기에 68세에 초등학교 입학을 하였습니다. 한글을 모르고 산 세월이 68년이었는데 글을 알고 났더니 속에 막힌 것들이 빵 뚫리는 기분이었습니다. 거리의 간판이 눈에 들어오고 지하철역이 눈이 들어 들어왔습니다. 신기했습니다. 덧셈도 뺄셈도 그리고 곱셈, 나눗셈도 어려웠지만 재미있었습니다.
이 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성여중에 입학했습니다. 그런데 공부가 초등학교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사회와 국사, 과학, 국어도 초등학교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웠습니다. 한자는 외우면 잊어버리고 외우면 잊어버리고. 하지만 모든 것들에 감사하고 즐거웠습니다. 매일 밤, 잠을 자지 않고 한자를 외웠습니다. 그랬더니 한자 읽기 6급에 합격을 했습니다. 얼마나 기쁘던지 내가 3000자 정도의 한자를 외워 시험에 합격을 한 겁니다. 6급을 따고나서 5급을 따고 싶어서 일 년 동안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험에 한자 시험에 60점을 받게 되어서 희망을 갖고 마지막 시험에 도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