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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만학도 259명 졸업식
작성일 : 08-08-25 22:03





8월 25일(월) 오전 10시, 양원주부학교 강당서


주부 만학도 259명 졸업식
8월 25일(월) 오전 10시, 양원주부학교 강당서 

  8월 25일(월) 오전 10시, 마포구(구청장 신영섭) 대흥동에 소재한 양원주부학교(교장 이선재) 강당에서 259명의 주부 만학도들이 졸업식을 갖는다.
  이번 졸업식에는 20대부터 70대 사이의 여성 259명이 참석하며 이들을 대상으로 덕행상, 근무상, 학술상, 효행상, 개근상, 봉사상, 근면상, 끈기상, 목표도달상, 특기상 등 시상도 있을 예정이다. 
  이번 졸업생의 74%(191명)는 5~60대 여성이며 70대 노인도 5%(14명)에 이른다. 최고령자는 78세 김영애 할머니이다. 그 밖에도 박성순, 최막래씨와 같이통학시간을 무려 5시간씩 투자해 학업을 마친 열혈여성도 있다.
  양원주부학교는 평생교육시설로 서울시 교육청에 등록되어 있으며 일성고등공민학교가 이 학교의 전신이다.
  일성고등공민학교는 6.25전쟁 중 함경남도 북청에서 피난 나온 분들이 자신들의 자녀와 전쟁고아, 극빈아동을 교육시킬 목적으로 1952년에 세운 야학이다.    80년대 초부터 한 학급에 10여명의 나이 많은 주부학생들이 모였고 83년부터는 주부들을 따로 지도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양원주부학교의 시작이다.
  2008년 현재 일성과 양원을 졸업한 학생 수는 42,000여 명에 이른다. 기초반, 중고등부, 전문부, 평생부 등이 개설되어 있으며 국어, 영어, 한문, 수학 등을 기초학문을 배운다. 각 과정은 1년, 주 3회 수업이 진행된다. 




■ 졸업생 사연 

순
이 름
나 이
특이 사연
1
 홍정자
(중3-1)
67세
휠체어 타고 고양시에서 신촌으로 공부하러 갑니다. 목발과 휠체어가 이제 부끄럽거나 불편하지 않습니다.
2
탁재득
(중3-1)
73세
한글과 숫자를 몰라서 버스를 타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양원에서 공부하여 중학교 입학검정고시에 합격을 하고 한자읽기도 2급을 취득했습니다.
3
최막래
(기3-3)
66세
여덟 살 때 6.25전쟁이 나서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할머니가 되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천안에서 서울 신촌이 멀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4
이종미
(기1-1)
51세
화상으로 손을 잃었고, 남편은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합니다. 장애가 있지만 서로 손과 발이 되어 희망을 만들어 갑니다.
5
이옥자
(중3-1)
55세
엄마도 딸도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그 불행에서 모녀를 건진 것은 양원주부학교입니다.
6
조회숙
(고3-1)
48세
냉장고,세탁기,씽크대 등 눈길이 닿는 곳엔 무엇이든 공부하는 내용의 메모지로 도배를 합니다.
 

1. 홍정자 (67세, 중3-1)
휠체어 타고 고양시에서 신촌으로 공부하러 갑니다.
  2남 1녀 중 막내로 초등학교 2학년 때 6,25가 터졌고, 전쟁 후 3년을 더 다녀 졸업은 했습니다만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모님은 저를 그 후 직장을 가지도록 하셨습니다. 공부에 한이 되어 늘 담벼락 뒤에 숨어서 하얀 칼라에 예쁜 가방을 들고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을 몰래 보며 부러워하고 숨어 다니는 생활은 지금도 가슴 한 켠을 쓰리게 합니다.
  중매로 만난 남편(현재 73세)은 그래도 온화한 성격이라 못 배운 아내의 입장을 잘 어루만져주며 이해해 주었습니다. 맏며느리기에 집안의 대소사를 치르느라 슬하에 1남 5녀의 자녀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는데,  애들은 엄마의 무관심에도 잘 자라 주었습니다. 양원 주부학교 입학식 때는 큰 사위가 꽃다발을 보내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애들 모두 못난 엄마를 너무 사랑해 줍니다.
  5년 전 당뇨병과 신장 기능의 이상으로 병원신세를 졌습니다. 아직도 그 고통이 주기적으로 찾아오지만 근근이 버티고 있습니다. 쉰아홉 살에 혼자 찜질방에 갔다가 화상을 크게 입었고 병원에서는 다리를 쓸 수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를 들어야 했습니다. 믿을 수 없고 돌이킬 수도 없었지만 결국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목발과 휠체어의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눈물이 한없이 나오고 가슴이 아팠지만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남편과 아이들도 늘 격려해주고 내 몸처럼 불편하지 않게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습니다.
집에서 쉬며 컴퓨터를 만지작거리게 되었고 꽤 실력도 나아졌습니다. 다음카페에 “산골마을”을 직접 제작해서 운영 중이고, “홍여사의 컴퓨터강좌”란도 만들어 아는 것을 조금씩 올려 나름대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TV를 보다가 양원주부학교가 방송에 나오길래 공부가 하고 싶다고 하니까 큰 딸이 가서 접수를 해주었습니다. 과연 잘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앞섰지만 훌륭하신 교장 선생님과 좋으신 선생님들의 배려로 중학교 검정고시를 합격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한자읽기도 4급을 땄고, 고사성어 과정도 중2과정을 합격했으며, 펜글씨도 6급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족하고 어렵지만 지금은 대입검정고시를 준비 중입니다.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도전을 한다는 것 자체를 즐기며 살아가렵니다.

2. 탁재득(중3-1, 73세)
숫자를 읽지 못해 버스를 타지 못했습니다.
 
  저는 5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는데 어린 시절 아버지는 특별히 하시는 일이 없으신 채로 온 가족이 배고픔 속에 생활을 했습니다. 7살에 어머니는 가난으로 인한 병으로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돈을 버신다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도착한 곳이 바로 일본의 히로시마였습니다.
일본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려고 할 때 하늘에서 번쩍하는 순간 세상은 온통 원자폭탄으로 뒤집혀졌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해방을 맞아 다시 고국으로 돌아왔고 그 후유증인지 아버지는 곧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부모 없이 안 해본 일이 없고 못해 본 직업이 없을 정도로 전국을 돌아다니는 가운데 나이가 들고 우연히 남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결혼하여 1남 1녀까지 두었지만, 남편은 25살에 아들과 딸을 남겨두고 결혼 한지 4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아이들을 데리고 살아가려니 닥치는 대로 돈이 되는 일이라면 팔을 걷어 부치고 무엇이든지 해야 했습니다. 또한 홀로 계신 시아버님(86세 사망)을 34년을 모시었습니다. 환갑이 지나고 살림이 좀 나아지나보다 라고 생각될 때 딸아이가 고학을 해서 연세대학교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든 뭐로든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는데, 아들 딸은 알아서 잘 커갔습니다.
  그러나 나의 삶은 배우지 못한 결과로 온통 두려움뿐이었습니다. 버스 번호를 읽을 줄 몰라서 파출부 하러 일을 가는데 어느 버스를 타야 할 지 막연할 때도 많고 내리는 곳을 몰라서 기사에게 야단도 많이 맞았습니다.
어느 날 TV를 보다가 양원주부학교가 방송에 나오는 것을 보고 “나도 저런데서 공부 좀 해봤으면 원이 없겠다.”라고 푸념을 했더니 딸이 그 다음날 알아보고 등록을 해주었습니다. 양원주부학교에 입학한 지 5년 만에 중학교 입학 자격 검정고시에도 합격하고 한자 읽기 급수도 2급을 합격했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고 몸도 늙어갔습니다. 머리가 성성백발이 된 지금도 가끔 히로시마 원폭피해자라는 이유로  일본에 가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만 학교 경비 아저씨보다도 일찍 등교하는 성실한 학생이 되어 오로지 공부만 합니다. 

3. 최막래 (기3-3, 66세)
인생이 허무하고 슬플 때 찾아 온 양원주부학교
  내 나이 여덟 살 때 6.25 전쟁이 터졌다. 그로 인하여 나의 인생은 배우지 못한 한을 가슴 깊숙이 묻어두고 살아야했다. 우리 집은 소작 농사를 지으며 어렵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셋째 오빠는 군대에 끌려가 23살에 전사하여 부모님 가슴에 한을 남겼다.
  팔남매 3남 5녀 중 4녀인 나에게 가족들은 무관심했다. 오빠들만 학교를 보냈고 나는 간신히 초등학교 2학년까지만 다녔다. 학교 다니는 친구들을 볼 때면 얼마나 기가 죽던지 남모르게 눈물을 훔치며 뒤돌아서서 울기를 어찌 헤아릴 수가 있을까! 공부를 싶어도 하지 못한 것은 고스란히 한이 되어 내 가슴에 맺혀 있다.
  장성하여 결혼을 하고 형제 둘을 낳았다. 내 아이들에게는 원 없이 공부를 시켜 주리라. 다짐하며 남편과 나는 열심히 살았다.  다행이 두 아들은  잘 자라 주었고 공부도 잘 했다.
  가족만을 위해 희생하며 살았건만,  내 나이 육십이 지나 죽을 날만 기다리며 살자니 너무나 허무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조카딸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가 양원주부학교를 알게 되어 물어물어 찾아왔다. 막상 가보니 용기가 생기지 않아 원서를 쓰지 못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부끄럽기도 하고 이 나이에 무슨 공부냐 하는 생각에 망설임과 자신감도 안 생겨 1년을 고민하다가 다시 찾아가 드디어 등록을 했다. 입학식을 하려고 차를 타고 가면서 얼마나 떨리고 설레었는지 모른다.
  멀리 천안에서 다닌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고 또 교통비도 만만치 않고 손자도 봐야 하고 교회일도 맡아서 하고 있는데 잘 할 수 있을까 만 가지 걱정이 앞섰다.
  학교 가기 전에는 나만 못 배워 한스러운 줄만 알았는데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많은 힘을 받았다. 들어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머리를 가지고 공부하려니 선생님들께 죄송한 마음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양원주부학교가 있어 배우지 못한 한을 풀 수가 있어 선생님들에게 감사한 마음뿐이다. 때로는 전철을 타고 가면서 눈물이 흐른다. 우리 시절엔 아이들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느라 노후 대책 하나 못했다. 그래서 더 인생이 허무하고 슬픈지 모르겠다.  하지만 양원주부학교를 만나 꿈에 부풀어있다. 


4. 이종미(기1-1, 51세)
서로의 손과 발이 되어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아기일 때였다. 막 기어 다니기 시작할 즈음, 그만 화롯불을 손으로 집는 바람에 화상으로 왼쪽 손가락을 잃고 오른손도 불편한 장애를 얻었다. 아이들이 놀릴까 봐 학교도 가지 못했고 결국 배우지 못했다.
  그렇게 장애인으로 살다가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한 장애를 가진 남자를 중매로 만났다. 어디까지나 나의 선택이었다. 내가 몸이 불편하니 다리가 불편한 사람을 만나 손은 불편하지만 다리가 성한 내가 서로 의지하며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우리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하며 사이좋게 살았고 또 잘 생긴 아들도 하나 얻었다. 아들이 장성하자 국가에서 나오던 모든 지원은 끊기고 11평짜리 영구 임대 아파트에서 사글세를 내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이웃에 사는 다리가 불편한 이를 도운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 모습을 눈여겨 본 지체 장애 회장님께서 나에게 봉사를 권유하셨다. 다리가 불편한 이들이 이동할 때 업어서 도와드리는 일이다. 아무것도 할 일이 없던 나에게 이 봉사는 뜻하지 않은 큰 보람과 기쁨을 주었다. 그런데 교통사고를 당해서 허리를 다쳤고 디스크 수술을 했다. 그래서 그나마 하던 봉사를 더 이상 할 수가 없었다. 허리가 아파 여러 가지 약을 복용하던 중, 약의 부작용으로 눈이 많이 나빠졌다. 눈이 나빠지니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 때 ‘아, 눈이 안 보이는 분들의 눈이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일주일에 3번 남산에 녹색 체육관에 가서 시각 장애우들의 운동을 도와주는 봉사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 몇 몇 환자들이 책을 읽고 싶어 하는데 눈 때문에 못 읽으니 대신 읽어달라고 하였다. 그런데 배우지를 못해 책을 읽어 줄 수가 없었다. 그것을 계기로 그 분들에게 제대로 봉사를 하기 위해 양원주부학교에 기초 1학년으로 입학하게 되었다. 학교에 들어와서 글을 배우면서 또 다른 기쁨과 보람을 느끼고 있다.
  지금은 받아쓰기와 읽기를 제법 한다. 조금 더 공부해서 나와 같은 장애우를 위해 더 많은 봉사를 하는 것이 나의 꿈이다.


5. 이옥자(중3-1, 55세)
엄마와 딸이 함께 공부하는 학교 
  어려서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공부할 기회를 가질 수가 없었다. 이런 저런 일을 하다 남편과 만나 결혼을 하고 34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결혼하면서부터 같이 살기 시작한 시댁 식구들은 어린 나에게는 많이 힘이 들었다. 외국에서 오랜 시간 일하고 온 남편은 가족 부양을 제대로 해 주지 않아 내가 일을 해야 했다.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온갖 고생을 했다. 작은 트럭을 사서 시작한 장사로 일 년 뒤에는 작은 가게를 열었다. 산후조리 일을 도우며 경제를 도왔다. 아들을 낳고, 딸을 낳았는데 딸아이는 장애인의 기준으로 보면 인지력이 높고 비장애인으로 볼 때는 인지력이 다소 낮은 편이다. 
  딸아이를 고등학교까지 졸업은 시켰으나 또래의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했다. 늘 주눅이 들어 있고, 졸업 후에는 집에만 있게 했더니 인터넷에 빠져 살았다. 그때는 인터넷을 사용하면 하는 대로 전화비가 올라갔다. 한 달에 몇 십만 원씩 나오는 전화비를 아깝다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딸은 우울증에 시달렸다. 나도 덩달아 우울증에 빠졌다. 그러던 중 양원주부학교를 알게 되어 나 자신의 공부 뿐 아니라 딸아이를 위해  함께 등록을 했다.
  그렇게 원하던 공부를 시작했다. 양원에서의 공부는 내게는 그 동안 내 안에 늘 숨겨져 담아왔던 공부에 대한 응어리를 풀어내는 귀한 시간이 되어 주었고, 걱정했던 딸아이도 적응을 잘 하며 나를 따라 오고 있다. 집에만 있던 딸아이에게 양원 생활은 자신감을 갖게 했고 많이 밝아지게 했다. 딸은 자신만이 세상에서 가장 못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사람들과 어울리며 생활하다 보니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다. 이제는 자신도 세상에 날개를 펴고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자체로 나는 너무나 큰 선물을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딸아이에게는 여기 양원 생활을 통해 얻은 자신감을 갖고 아이가 다닐 수 있는 직업학교를 찾아 보낼 생각이다. 양원 생활을 시작한 후 일을 할 시간이 줄어들어서 경제적으로 힘이 들지만 나날이 늘어만 가는 나의 실력과 좋아지는 딸아이를 보며 조금 더 큰 희망을 그려본다.

6. 조회숙 (고3-1, 48세)
내 눈이 닿는 곳엔 공부하는 메모지로 도배를 합니다
  내 어릴 적 가난이라는 넘지 못 할 큰 산 앞에서 상급학교는 꿈도 못 꾼 채 일찍이 고향을 떠나 삶의 전선으로 뛰어들었다. 하루 10시간씩 일을 하면서 오직 가난이라는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야근을 자청했다. 칠남매의 맏이로서 공부보다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마음이 더 절실했다. 결혼 후 꿈은 점점 멀어져만 갔고 배우고자 하는 소망의 끈은 놓을 수가 없었기에 다 늦기 전에 용기를 내어 양원주부학교에 입학을 했다. 
  하루 수업 네 시간!! 그 시간은 왜 그렇게 짧은지, 조금 알만하면 끝나는 종이 울리는 바람에 아쉬움에 안달이 나기도 하고 알쏭달쏭 고개만 끄덕이기도 하지만 하루에 한자라도 더 배우고 익히려는 열정을 쏟아 부었다.
  어느 곳이든 글이 있는 곳이 나의 연습장이 되고 참고서가 되고 더듬더듬 한 자 한 자 맞추다가 단어가 완성될 때면 해냈다는 성취감에 쾌재를 부르며 웃음을 흘리기도 하고 혹여 모르는 것은 메모 해 두었다가 집에 오면 얼른 사전을 찾아보곤 하였습니다.
  국경일이나 휴일이라도 끼어 있을 때면 학교가 그리워지고 "또 오늘은 무엇을 배울까?" 하는 기대감에 또 내일이 기다려지고 밤이면 오늘 배웠던 문구들을 천장에 쭉 나열 해 놓고 곱십어 보기도 하고 시험 기간이 다가 올 때면 싱크대나 냉장고, 눈을 돌릴 수 있는 곳은 모두 빼곡히 적힌 메모지로 도배를 해놓고 설거지 할 때나 밥할 때, 학교  오가는 차안에서도 작은 수첩에 깨알 같은 글씨로 메모를 해 보고 또 보는 반복 학습을 한 결과 검정고시를 통해 일 년 만에 고검, 대검을  통과했다.
  또 글쓰기를 좋아해서 빠지지 않고 대회에 참석한 결과 문예정보화 대회에서 컴퓨터 글쓰기를 통해 슬기상을 탔고 여성백일장과 가족백일장에 나가서는 시가 뭔지도 모르고 내 심정을 솔직히 풀어냈는데 차하 상을 받는 영광의 기쁨도 안았습니다. 그것에 용기를 얻어 전국 창작시 공모전에 응모하여 뜻하지 않은 특별상을 받아 국회에 가서 유명한 시인님들과 국회의원들의 시낭송회를 보고 만찬을 했던 그 순간의 영광을 누린 기억은 내 생전에 꿈에도 잊지 못할 내안의 소중한 보물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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